2008년 07월 12일
'오컬트 오페라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Hoffann) - 오펜바흐
오랫만의 오페라 포스팅 되겠다.
뭐 그 간 심적 여유도 없고 오페라를 볼 겨를도 없어서 포스팅도 뜸하긴 했다. 사실 가볍게 글이나 적어볼까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호프만의 이야기'. 이 작품 꽤 느낌이 어둡고 가슴 졸여서 현재 내 기분과 맞아 떨어지는 터라 기억을 살려서 주저리주저리 적어본다.
오페라는 등장인물이 썩 많지가 않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극 자체가 집중도가 떨어져서 관객들도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왠만한 오페라들은 대개 중심 인물이 너덧 정도이고 합창 논외의 아리아를 부르는 사람도 열 명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 그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같은 작품은 어찌된 거냐고 따지신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대충 기억나는 인물만 따져도 타미노, 파미나, 파파게노, 파파게나, 자라스트로, 밤의 여왕, 밤의 여왕의 시녀 3인, 모노스타토스, 간수 2명 등 더 있던가...-_-; 확실히 모차르트 작품은 특별하군. 흠흠.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호프만의 이야기는 또 조금 경우가 특이하다.
일단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주인공인 호프만과 그의 친구인 니콜라우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연인 스켈라와 연적인 린도르프, 시의 여신이 있다.
1막에서는 기계인형 올림피아와 발명가인 스팔란차니, 인형 눈 전문가 코펠리우스가 나온다.
2막에서는 병약한 여인 안토니아와 그녀의 아버지 크레스펠, 그녀의 어머니 유령, 크레스펠의 하인인 프란츠, 의사인 미라클의 배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3막에서는 화류계의 여인인 줄리에타와 그녀의 정부 슐레밀, 또다른 정부 피티치니초, 악마 다페르투토가 나온다.
사람 숫자를 세어보니 전부 17명이나 된다. 술집에서 사이사이에 노래를 거드는 사람까지 치면 실상 좀 더 많다.
너무 난잡해서 몰입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은 재미있는 사실이 숨어있다.
1) 호프만의 연인으로 나오는 스텔라, 올림피아, 안토니아, 줄리에타(소프라노)를 묶고,
2) 호프만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악역들인 린도르프, 코펠리우스, 다페르투토, 미라클(바리톤)을 묶은 후,
3 )호프만의 친구 니콜라우스와 시의 여신(소프라노)을 한 역할로 묶는다.
즉 이 묶은 역할을 한 명의 성악가가 해내는 것이다. 물론 연출자에 따라 이런 배역을 나누어 다른 성악가를 맡기기도 하지만 '호프만의 연인', '호프만의 훼방꾼', '호프만의 조력자'로 구분해서 프롤로그부터 각 막, 에필로그까지 감상하면 썩 어렵지 않게 배역을 해석할 수 있다.
그럼 작품 내용을 살펴보자. 미리 밝혀두건데 이 작품은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오페라다. 액자 형식의 구성인데 다분히 컬트적이다.
프롤로그에서는 술에 취한 시인 호프만이 쓰러져 있고 시의 여신이 그를 위로하고는 사라진다.
장면이 바뀌어 한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다. 모두 프리마 돈나인 스텔라의 오페라 공연 2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한쪽 구석에는 시의원인 린도르프가 앉아 있다. 린도르프는 스텔라의 심부름꾼을 매수한 후, 스텔라가 호프만에게 보내는 연서를 가로채서 태워버리고 편지 속에 들어있는 열쇠를 챙긴다.
호프만이 그의 친구 니콜라우스와 선술집에 들어온다. 호프만은 재담꾼이라 사람들이 다들 좋아한다. 이 날도 호프만은 '클라인차르의 전설'이라는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지만 갑자기 침울해한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호프만은 세 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1막은 이탈리아 발명가 스팔란차니 저택의 무도회장이다. 발명가 스팔란차니는 정말 사람과 똑같아 보이는 정밀한 기계 인형을 만들어 내지만 눈 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 분야의 전문가인 코펠리우스에게 도움을 받는다.
완성된 인형은 올림피아 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때마침 무도회장에 들어오던 호프만은 이 기계 인형을 보고는 첫 눈에 반하고 만다. 친구인 니콜라우스는 그녀는 단지 인형에 불과하다고 말해주지만 호프만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형을 작동시키자 올림피아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코펠리우스에게서 마법의 안경을 사서 끼고 있는 호프만은 그녀가 어떤 여인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에게 춤을 청한 그는 함께 춤을 추지만 올림피아의 기계 장치에 문제가 생겨 멈추지를 않아서 호프만은 지쳐 쓰러진다.
한편 스팔란치니가 인형 눈의 대가로 코펠리우스에게 지불했던 어음이 부도가 나고, 화가 난 코펠리우스는 올림피아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호프만 앞에 코펠리우스가 서서 차갑게 웃는다. 그리고는 부서진 인형의 머리를 호프만에게 던진다...
2막은 뮌헨의 안토니아 집이다.
- 2막의 내용 설명에 앞서서 약간의 사족을 붙인다면 여기서 제작자의 해석이 중요한 기로에 선다. 2막과 3막의 순서가 바로 문제이다.
호프만의 사랑의 대상인 안토니아는 정숙한 처녀로 나온다. 한편 줄리에타는 화류계 여자이다. 1막은 예쁜 인형인 올림피아, 즉 외모에 치중하는 남자의 치기어린 시절을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그에 비해 안토니아는 정신적인 교감에 의한 애정, 줄리에타는 육체를 탐미하는 만남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보통 외모로 시작해서 한 때 육체에 빠지지만 결국 정신적인 교감을 찾는다는 식으로 해석해서 줄리에타를 2막, 안토니아를 3막으로 많이 배치한다.
하지만 원작은 외모로 시작하지만 곧 정신적인 교감의 만남을 가지나 비극으로 끝나고, 결국 육체만을 찾는 신세로 전락한다고 구성해 놓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이 훨씬 마음에 들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 취향이 다르리라고 믿는다.-
안토니아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인 크레스펠은 그런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악화되는 몸인 것을 잘 알기에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하인인 프란츠에게 모든 문병객을 내쫓으라고 지시한다.
그때 연인인 호프만이 찾아오자 프란츠는 안토니아에게 데려다 준다. 이 하인, 사실 귀가 어두웠던 것이다. -_-;; 호프만은 안토니아를 걱정해서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
호프만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미라클이라는 집안의 주치의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박사는 집에 걸려 있는 안토니아 어머니의 초상화를 악령으로 불러낸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도 미라클이 죽였던 것이다. 미라클은 안토니아에게 노래부르기를 종용한다. 안토니아 어머니의 망령도 그녀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한다. 미라클이 저주의 바이올린까지 꺼내어 연주를 시작하자 그녀는 홀린 듯 점점 높은 옥타브로 노래한다. 계속 따라부르던 그녀는 결국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마침 다시 찾아온 호프만이 황급히 그녀를 끌어안지만 안토니아는 숨을 거두고 만다. 미라클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결국 죽었다고 즐겁게 웃는다...
3막은 베네치아 거대한 운하를 배경으로 한 거리이다. 이 곳에는 줄리에타라는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일대에서 알아주는 화류계 여인이다. 그녀에게는 그림자가 없는 정부 슐레밀이 있다. 그의 그림자는 악마 다페르투토가 줄리에타를 시켜서 훔쳐내었던 것이다.
호프만은 줄리에타의 육감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불탄다. 친구 니콜라우스는 줄리에타와의 사랑은 위험하다고 경고해주지만 역시 콩깍지가 씌인 호프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다페르투토는 줄리에타에게 호프만을 유혹해 그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훔쳐오면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줄리에타의 유혹에 호프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빠져들고 순간 그의 거울에 비친 상은 사라진다.
줄리에타가 호프만에게 자신의 방 열쇠를 건네주자 그것을 보고 격노한 슐레밀이 달려든다. 순간 나타난 악마 다페르투토는 호프만에게 도움을 주는 척 타락의 검을 들려주고 그것을 받아든 호프만은 슐레밀을 찔러 죽인다.
호프만은 그녀를 가지겠다는 욕망에 그녀의 방으로 달려가지만, 줄리에타는 다른 정부인 피티치니초와 곤돌라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유유히 운하 위를 흘러간다...
에필로그에서는 그의 사랑 이야기에 넋을 잃은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있다. 오페라의 2막은 보지않고 그의 이야기만 들었던 것이다.
- 아니면 사실 그의 이야기 자체가 스텔라가 나오는 오페라였던가? 시인이자 극작가인 호프만이 적은 대본에 따라 공연이 이루어졌던 것일까? -
호프만은 술에 취에 곯아 떨어진다. 공연을 마친 스텔라가 술집을 찾아오지만 그녀를 반기는 것은 꽃을 든 린도르프다. 그녀는 그와 팔짱을 끼고, 린도르프는 쓰러진 호프만을 보고 비웃으면서 그녀와 술집을 떠난다.
쓰러진 그에게 시의 여신이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호프만의 창작의 길에 행운을 빌어주며 막이 내린다.
어떤가? 조금 정신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오페라는 19C 독일 작가인 호프만의 세 가지 소설을 묶어서 한 편의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이 호프만이라는 작가는 낮에는 번듯한 직장을 -의사 였던가 변호사 였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하여간- 가지고 있으면서 밤에는 다소 몽환적이고 오컬트적인 작품을 적어내는 사람이었단다.
오페라만 봐도 마법의 안경, 노래하는 마리오네트, 초상화의 악령, 저주의 바이올린, 사람의 영혼(그림자, 거울의 상) 훔치기, 타락의 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마, 주인공의 옆에서 친구로 있어주는 뮤즈 등 기괴한 소재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소재만 해도 요즘 젊은 층에서 꽤나 호응을 얻을 것 같지 않은가?
사실 소재들의 상징하는 관념이나,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상 등에 대해서 이야기거리가 대단히 많은 오페라지만 그런 부분은 감상자의 몫으로 돌리고 싶다. 내용을 알고 보는 것만 해도 김 빠지는 일인데 구구절절 해설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소감을 약간 밝히자면, 우선 이탈리아어가 득세하는 오페라 바닥에서는 꽤나 드문 프랑스어 오페라라 꽤나 흥미롭게 감상했다. 내용이나 분위기도 취향에 무척 잘 맞는 오페라라서, 좋아하는 오페라를 뽑으라면 '호프만의 이야기'는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다.
끝으로 이 오페라를 추천해 드리고 싶은 분들은 우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에 좌절하고 슬퍼하는 남성분(-_-;;)들이다.
덧) 한 명의 바리톤이 호프만의 훼방꾼인 악마역을 맡는 것을 계속 보지만, 한 명의 소프라노가 호프만의 연인 역을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물론 한 소프라노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한다면 작품의 구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리라고 믿지만, 원체 배역 성격 자체가 천차만별이라 연기에 어려움이 있을 법도 하고, 또 어찌보면 한 소프라노가 다한다면 아쉽게 느낄만큼 훌륭한 아리아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각각의 소프라노들이 아주 공을 들여서 맡은 부분의 실력을 뽐낸다. 보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소프라노의 음색을 들을 수 있어서 아주 귀가 흡족한 오페라다.
덧2) 올랭피아라는 마리오네트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악마같은 사나이, 게다가 불어의 연속이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의 한 만화작가가 과연 어느 정도는 차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개인적인 잡설 ^^;;
덧3) 로베르토 베니니의 유명한 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정말로 유명한 곡인 뱃노래가 나온다. 많이 알려진 영화니 담에 또 볼 기회가 있으심 아 이 곡이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곡이구나 라고 알고 보시면 좋을 듯. ^^

# by | 2008/07/12 03:48 | 영화&오페라 | 트랙백 | 덧글(1)




